빌 게이츠가 추천하기도 했고, 포트폴리오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테슬라의 주요 목표(마스터플랜)와 연관이 깊은 전력망에 관련된 내용이라 읽어봤...는데, 솔직히 너무 읽기 어려웠다. 번역의 퀄리티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던데, 그걸 떠나서 일단 내용 자체가 전문적인 게 많아서 번역을 잘해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내용.
책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한 상태로 숨쉬듯이 사용하는 "전기"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리드(Grid), 즉 전력망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문득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는 모두 매일 쓰는 전기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싶다. 스위치 켜면 불들어오고, 꽂으면 핸드폰 충전되고, 콘센트 꽂으면 바로 가전제품 사용할 수 있고...근데 이 책을 읽으면 그러한 것들 이면에는 그리드(Grid), 즉 전력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엄청나게 거대하게 복잡한 시스템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오늘날 그리드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위기 속에 운용되고 있는지도 조금 알게 된다.
먼저 알게 되는 것은 오늘날의 그리드는 19세기말, 생산과 동시에 소비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설계된 것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기 때문에, 태양광/풍력과 같은 (일정한 생산이 담보되지 않는)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큰 이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일듯 하지만,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의 근본적인 문제는 전력 생산량이 적은것이 절대 아니라, 오히려 과잉생산이라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원자력이나 화력발전처럼 원할때 원하는 만큼 생산할 수 없고, 햇빛이 쨍쨍나고 바람이 씽씽 불때만 미친듯이 전력이 생산되기 때문에 문제. 이걸 다 쓰지도 못하고 저장할 시스템도 없으니 오히려 전력망에 부담을 주게 되며, 이걸 "Duck Curve(덕 커브)" 현상이라고 부부른다. 낮에 태양광으로 생산된 전기가 너무 많아지면 기존 발전소 출력을 줄여야 하고, 해가 지면 갑자기 확 늘려야 하므로.
이 문제는 결국 세 번째 과제랑 이어지는데, 바로 에너지 저장 능력의 부재. 지금 전력망은 화력이나 원자력처럼 필요할 때 전기를 확 만들 수 있는 발전소에 맞춰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를 쓰려면, 생산된 전기를 필요할 때까지 '담아둘' 강력한 저장 시스템이 무조건 필요하다. 근데 현재 그리드는 이런 저장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허술하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대규모 에너지 저장 기술은 아직 시작 단계고, 기존 설비로는 이걸 받아줄 수가 없다는 것. 책에서는 이것을 마치 물을 필요할 때만 틀어 쓸 수 있고 저장할 방법은 없는 수도관 같다고 비유한다.
그럼 이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책에서 몇가지 대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 강력한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만드는 것
- 정책적인 지원이 동반된, 막대한 금액의 전력망 기술 혁신 투자가 필요
- 전력망 구조 자체를 중앙집중식에서 분산형으로 변화
- 여러가지 에너지원을 통합으로 저장/분배할 수 있는 유연하고 스마트한 전력망 시스템의 개발
쓰고보니 T로 시작하는 요즘 CEO가 전시모드에 돌입했다는 어떤 기업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파워월/파워팩으로 ESS 시장을 선도하고...솔라루프도 하고 있고...Autobidder로 그리드랑 연계해서 수익도 내고...V2L에 가장 진심인 회사이고...뭐 그런 회사...)
Powerwall – 가정용 배터리 저장 | Tesla 대한민국
유럽을 비롯해서 노선을 바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는 국가들이 속출하고 있고, 트럼프는 원자력 발전용량을 극적으로 늘리는 행정명령을 내리는 등 각국의 AI로 인한 전력난을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Grid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더욱 커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는 뭐하냐...)
트럼프, 2050년까지 원전 발전 용량 4배 증대 행정명령
모두가 간과하는 그리드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위기의식을 환기시키며, 적절한 대책을 제시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오늘 몇몇 guru들이 언급하기 시작한) Grid가 앞으로 단순히 전기가 아닌 모든 것이 연결되는 진정한 Grid(망)으로서의 진화의 바탕이 될 가능성에 대한 언급까지, 번역은 다소 아쉽지만 다독할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 미드 Person of Interest에 나오는 "The Machine"은 작중에서 Grid망에 업로드된 것으로 묘사된다
# 주요 문구 스크랩
- 결국 우리가 매일매일 사용하는 전력은 항상 새로 만든 것이다.
- 전기 덕분에 우리는 동력을 생산하는 장소와 소비하는 장소가 일치해야 한다는 한계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 전기는 만들어지는 즉시 소비되어야 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고객의 소비량 역시 24시간 내내 생산량과 대략 동등한 수준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 PURPA는 더 큰 것이 결코 더 좋은 것은 아니며, ...(중략)... 정부가 규제하는 거대 유틸리티가 미국의 전력 생산 및 관리에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했다. 작은 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며, 게다가 비용 면에서도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졌다.
-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라고 할지라도 문제가 제때 처리되지 않고 누적되면 정보 시스템과 전력 시스템은 연쇄적인 기능 고장을 일으킨다.
- 하나의 송전선과 한 그루의 나무가 3개의 송전선과 3개의 나무에, 이어서 15개의 송전선로에 과부하가 걸리게 만들었으며, ...(중략)... 이 모든 것은 총 60억 달러에 달하는 기업 매출 감소로, 그리고 블랙아웃 당시에 잉태되어 9개월 뒤에 태어난 아이들의 증가로 이어졌다.
- "스위스 치즈 모델" : 시스템 설계자는 "파악하고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작은 고장들이 쌓여 거대한 재앙으로 변모되지 않도록 그 경로를 차단하는 방법을 찾아내 복잡성을 구성하고, 관리하며, 규제해야 한다.
- 문제는 우리가 전기를 총 몇 킬로와트시만큼 사용하는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순간에 몇 킬로와트의 부하가 그리드에 걸리는지 하는 것이다.
- 강풍에 노출되는 인프라가 휘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나을 것이고, 그럴 수 없을 경우 문제의 인프라가 부러지는 것은 피하기 어렵겠지만 신속하게 복구가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 150년 가까이 전기를 사용해 왔음에도 아직까지 남은 전기를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저장할 방법이 없다는 말은 왠지 말이 안되는 것 같다.
- (책 저술 시점 기준) 새롭게 출시되어 아직까지 널리 보급되지 않았지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테슬라의 동력 시스템은 가정용 리튬 이온 배터리 시스템과 동일한 원리로 제작된 배터리를 엔진 룸에 두고 있다. '파워월(Powerwall)'이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실용적이면서도 기묘한 멋을 풍긴다. 1950년대의 냉장고 디자이너에게 2015년 전기의 미래를 그려달라고 부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 통합되어 있으면서도 분산된, 이동 가능한 저장 수단으로서 전기자동차들은 기반 시설의 효율성과 신뢰성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보통 자동차는 전체 사용 기간 가운데 단지 3~5%만이 활용되는 "매우 바보처럼 사용되는 자산"이라고 말한다. 그리드에 연결할 수 있으며, 사용하지 않을 때 그리드에 에너지를 다시 되돌려 줄 수 있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면 "자산 이용률이 치솟아 95~97%에 이르게 됩니다."...(후략)
- 인프라는 가시적이지 않아야 한다. 인프라는 시야에서 벗어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의식하면서 사용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인프라는 시끄러운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며, 사람들의 목적에 잘 부합해야 하고, 시야에 잘 들어와서도 안된다. 우리는 인프라를 의식해서도 안되고, 그에 대해 생각해서도 안되며, 의식적으로 그에 대해 요구해서도 안된다.
- 그리드는 단지 기술 시스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리드는 법적 시스템이면서 산업 시스템이고, 정치적 시스템이자 문화적 시스템이다.
- 19세기가 끝날 무렵에 니콜라 테슬라가 지적했듯, 그리드는 세계에 전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일 뿐만 아니라, 경제, 노동, 나아가 상상력까지도 한데 연결하는 통신망을 유지하는 데도 본질적인 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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